진안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경영(慶榮) 1875∼1940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자는 영옥(榮玉), 호는 백당(栢堂). 대군의 19대손이며 궁내부 주서 · 통정대부 비서감승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인동장씨로 치원(致遠)의 딸이다.
 묘소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도원동 안령 우산 손좌이다.
긍원(兢源) 1836∼1901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5대손이며 백원과 종형제간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 오위장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청송심씨이다.
 묘지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도이리 양지촌 해좌이다.
기호(起浩) 1854∼1927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자는 중언(仲彦), 호는 청송(靑松). 대군의 18대손.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평택임씨로 중언(仲言)의 딸이다.
 묘소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가평 후항치 하 갑좌에 있다.
명대(命大) 1720∼1785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2대손으로 통정대부 호조참의를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평양조씨이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하가등리 선영 계좌에 있다.
배원(培元) 1802∼1881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4대손, 가선대부 예조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김해김씨 인적(仁迪)의 딸과 남원황씨 윤선(允善)의 딸이다.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계황촌 진좌이다.
백원(百源) ? ∼1884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5대손.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 오위장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의령남씨이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도이리 선영에 있다.
섭(涉) 1632∼1692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0대손으로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 평양조씨로 남양대장(南陽大將) 영달(英達)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하가등리 임좌에 합장되었다.
수일(秀一) 1833∼1891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16대손이며 효원(孝源)의 아들이고 생부는 백원(百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과 첨지중추부사 겸 내금위장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해주오씨이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하가등리 앞기슭에 있다.
우(瑀) 1454∼1512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대군의 현손이며 가음정 은생의 장남이다.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단종대왕이 양위할 때 벼슬을 버리고 괴산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숨어 살다 괴산파의 시조가 되었다.
 배위는 숙부인 두원오씨로 찰방 숙창(叔昌)의 딸과 숙부인 성주이씨로 현감 익문(益文)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괴산군 괴산읍 신기리 도락동 서당현 술좌에 있다.
익서(翼瑞) 1707∼1739    파명:진안대군(鎭安大君)
  호는 성암(誠庵). 대군의 10대손. 어모장군 좌충위 부호군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문화류씨로 시흥(時興)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충주시 하사락의 걸연대 술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