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릉(健元陵) 조선 제1대 태조고황제의 능

고려의 뛰어난 무장이었던 태조太祖(1335~1408, 재위 1392~1398) 이성계는 1392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왕위에 올라 새 왕조를 열었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朝鮮으로 정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명나라와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사대정책을 썼고 농본주의를 통해 농업을 장려했다. 그러나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 화를 불러 일으키자 정치의 뜻을 버리고 고향 함흥으로 돌아갔다. 말년에는 불도 에 정진하다 1408년(태종 8) 5월 24일 창덕궁에서 74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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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월 27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현릉(顯陵) 조선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문종文宗(1414~1452, 재위 1450~1452)은 제4대 세종의 맏아들로 8세에 세자가 되어 29년 동안 세자 자리에 머물면서 학문을 익히고 정치 실무를 배웠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으나 건강 악화로 재위 2년여만인 39세에 승하했다.

현덕왕후顯德王后(1418~1441)는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1431년(세종 13) 세자궁에 궁녀로 들어가 세자(문종)의 후궁이 되었다. 1437년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세자빈에 올랐으며 1441년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떴다. 사후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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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월 10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목릉(穆陵) 조선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

선조宣祖(1552~1608, 재위 1567~1608)는 제11대 중종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1567년(명종 22)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선조는 이황, 이이 등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쓰는 한편 여러 전적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 그러나 심각한 당쟁으로 정치는 불안정 했고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의인왕후懿仁王后(1555~1600)는 반성부원군 박응순의 딸로 1569년(선조 2) 왕비에 책봉되고 가례를 올렸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다.

인목왕후仁穆王后(1584~1632)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로 1602년 왕비로 책봉되어 1606년에 선조의 유일한 적통인 영창대군을 낳았으나 광해군의 손에 아들을 잃었다. 인목왕후는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어 대왕대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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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3월 16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휘릉(徽陵) 조선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

장렬왕후莊烈王后(1624~1688)는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1638년(인조 16) 인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리고 왕비로 책봉되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고 효종, 현종, 숙종 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으나 인조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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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9월 20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숭릉(崇陵)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현종顯宗(1641~1674, 재위 1659~1674)은 제17대 효종의 맏아들로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조선 왕 중 유일하게 타국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현종은 군비를 강화하고 재정구조를 다시 정비하는 등 양난을 겪으면서 흔들렸던 조선왕조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명성왕후明聖王后(1642~1683)는 영돈녕부사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딸로 1651년(효종 2)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으며 1659년 현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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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9월 17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혜릉(惠陵) 조선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

단의왕후端懿王后(1686~1718)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로 1696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 세상을 떴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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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3월 8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원릉(元陵) 조선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

영조英祖(1694~1776, 재위 1724~1776)는 제19대 숙종의 넷째 아들로 1724년 경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영조는 탕평책을 써서 붕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백성들을 두루 살폈다.

조선 최장수 왕으로 보령이 83세에 이르며 재위기간은 52년이다.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는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로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1759년(영조 35) 15세 나이에 66세 영조의 계비로 책봉되었다.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사도세자의 손자인 순조 때에도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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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22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경릉(景陵) 조선 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성황후, 계비 효정성황후의 능

헌종憲宗(1827~1849, 재위 1834~1849)은 요절한 문조(효명세자)의 아들로 1834년 할아버지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8세에 즉위해 대왕대비 순원숙황후 김씨(순조의 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15세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동문휘고』,『 열성지장』,『 동국사략』,『 삼조보감』 등을 완성하였으며, 각 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 치적을 남겼다.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1828~1843)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6년만에 세상을 떴다.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1831~1903)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효현성황후의 뒤를 이어 1844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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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7월 25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수릉(綏陵) 추존 문조와 신정익황후의 능

문조文祖(익종 翼宗 1809~1830)는 제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1834년(순조 34)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되었다.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1808~1890)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순조 19) 효명세자(문조)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834년 부군인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의 차남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하였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조선후기 정국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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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월 25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오전 11시30분

홍릉(洪陵)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태황후의 능

고종高宗(1852~1919, 재위 1863~1907)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익종(추존문조)의 비인 신정익황후 조씨(조대비)의 지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운영하였으나, 1873년(고종 10) 친정을 선포하고 조일수호 조약(강화도조약 1876),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체결하는 등 대외개방 정책을 펼쳤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혁명(1894),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등 근대 한국의 주요 사건을 겪으며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1919년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1851~1895)는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로 1866년 고종과 가례를 올렸다. 고종 친정 이후 조선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명성태황후가 러시아와 손잡고 일본 세력을 추방하려하자 위기를 느낀 일본에 의해 1895년 시해되었다.(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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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음력12월 20일(고종)/10월 8일(명성태황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홍․유릉)
오전 11시 30분

유릉(裕陵) 조선 제27대 순종과 원후 순명효황후, 계후 순정효황후의 능

순종純宗(1874~1926, 재위 1907~1910)은 고종과 명성태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년에 즉위하였다. 1926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으며 순종 국장일에 맞추어·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1872~1904)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로 1897년에 황태자비가 되었으나 순종이 즉위하기 전에 승하하여 지금의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모셨다가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천장하여 함께 모셨다.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1894~1966)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로 순종의 계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을 겪었고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슬픔을 달래다가 1966년 73세로 승하했으며 순종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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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25일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홍유릉)
오전 11시30분

광릉(光陵) 조선 제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세조世祖(1417~1468, 재위 1455~1468)는 제4대 세종의 둘째 아들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1455년 조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병약한 문종과 어린 단종을 거치며 떨어졌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과 육조(이, 호, 예, 병, 형, 공조)를 직접 연결하는 육조직계제를 부활시켰으며 호적·호패제를 강화했다. 진관체제를 실시해 전국 방위체제를 수립하고 중앙군을 5위로 개편했다. 1460년, 1467년 두 차례에 걸쳐 북방의 여진족을 소탕하는 등 국방도 튼튼히 했다. 각종 법전을 정비하고 조선의 공식 통치규범인『 경국대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1468년(세조 14) 9월 8일 수강궁(옛 창경궁) 정침에서 승하하였다.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판중추부사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로 1428년(세종 10) 세조와 가례를 올리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장남 의경세자(덕종)가 20세에 요절한 뒤 차남 예종이 19세에 즉위하였으나 예종마저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을 왕위에 올리고 13세 성종을 대신하여 7년 동안 수렴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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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음력 9월 8일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광릉:사적 197호)
오전 11시30분

사릉(思陵) 조선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는 판돈녕부사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 2) 왕비로 책봉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되었고 그 후 단종을 영영 만나지 못했다.

단종이 17세 나이로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지금의 청룡사)뒤 산봉우리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하였으며 82세에 세상을 떴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으로 강봉되었던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에서 왕후로 복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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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7월 17일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사릉:사적 209호)
오전 11시30분

장릉(莊陵)영월 조선 제6대 단종의 능

단종端宗(1441~1457, 재위 1452~1455)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3일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단종 3)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의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세조 3)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해 10월에 다시 폐서인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1516년(중종 11) 장릉은 비로소 무덤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698년(숙종 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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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1월 19일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장릉:사적 196호)
오전 11시30분

영릉(英陵)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세종世宗(1397~1450, 재위 1418~1450)은 제3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 6월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된 뒤 같은 해 8월 1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6진 개척, 쓰시마 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전 분야에서륭 훌한 업적을 남겼다.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로 1408년(태종 8)에 충녕대군(세종)과 가례를 올렸다. 세종과 사이에서 8남 2녀를 두어 조선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비로 손꼽히며 궁궐 안주인의 소임을 훌륭히 수행하여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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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8일(세종대왕)/4월 28일(소헌왕후) 여주군 능서면 영릉로 269-50
(영릉:사적 195호)
오전 11시30분

녕릉(寧陵)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효종孝宗(1619~1659, 재위 1649~1659)은 제16대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이 끝난 뒤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가 8년 간 머물렀다. 귀국 후 1645년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세자에 책봉되어 1649년 (인조 27)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병자호란 이후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북벌정책을 추진하였다.

인선왕후仁宣王后(1618~1674)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딸이다. 병자호란 후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있을 때 현종을 낳았으며 귀국한 뒤 1649년(인조 27)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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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월 23일 여주군 능서면 영릉로 269-50
(녕릉)
오전 11시30분

선릉(宣陵)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성종成宗(1457~1494, 재위 1469~1494)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1469년에 예종이 승하하자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세조 때부터 편찬해오던『 경국대전』을 1485년(성종 16) 완성하여 반포했고, 1492년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하였다. 세조 때 공신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사림파를 등용, 훈신과 사림 간의 세력 균형을 통해 왕권을 안정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현왕후貞顯王后(1462~1530)는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1473년(성종 4) 입궁해 숙의에 봉해졌고, 1479년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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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음력 8월 22일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선․정릉:사적 199호)
오전 11시30분

정릉(靖陵) 조선 제11대 중종의 능

중종中宗(1488~1544, 재위 1506~1544)은 제9대 성종의 둘째 아들로 1506년에 박원종, 성희안 등 반정공신들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중종)을 추대하여 왕이 되었다. 중종은 연산군 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조광조 등 새로운 정치세력을 중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창경궁 환경전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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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2월 9일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선․정릉:사적 199호)
오전 11시30분

헌릉(獻陵)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태종太宗(1367~1422, 재위 1400~1418)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조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왕위를 놓고 태조의 왕자 사이에서 벌어진‘1 , 2차 왕자의 난’을 치르고 1400년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사병을 혁파하고, 육조직계제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했으며, 1405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또한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호패법을 실시하고 신문고와 의금부를 설치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1418년(태종 18) 3남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원경왕후元敬王后(1365~1420)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로, 1382년(고려 우왕 8) 이방원(태종)과 혼인했고 1392년(태조 1) 정녕옹주에 책봉되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1400년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정비靜妃로 진봉되었다. 양녕, 효령, 충녕(세종), 성녕의 4대군과 4공주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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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년 8일 서초구 헌인릉길 36-10
(헌ㆍ인릉:사적 194호)
오전 11시30분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숙황후의 능

순조純祖(1790~1834, 재위 1800~1834)는 제22대 정조의 둘째 아들로, 11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증조할아버지 영조의 제2계비인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03년 친정을 시작해 암행어사 파견, 만기요람 편찬, 국왕친위부대 강화, 하급친위관료 육성 등 국정개혁과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1789~1857)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로 1802년(순조 2) 왕비로 책봉되었다. 순조와의 사이에 효명세자와 공주 셋을 두었으며, 1857년 8월 창덕궁 양심각에서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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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2월 13일 서초구 헌인릉길 36-10
(헌․인릉:사적 194호)
오전 11시30분

태릉(泰陵)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

문정왕후文定王后는(1501~1565)는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151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8년 간 수렴청정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정왕후는 승려 보우를 앞세워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1565년(명종 20) 4월 7일 창덕궁 소덕당에서 65세로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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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5월 16일 노원구 화랑로 681
(태ㆍ강릉)
오전 11시30분

강릉(康陵)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

명종明宗(1534~1567, 재위 1545~1567)은 제11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45년에 인종이 승하하자 12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20세까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1553년(명종 8) 수렴청정을 거두고 친정을 하며 외척을 견제하고 고른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정은 혼란하였다. 1563년 외아들 순회세자를 잃고, 2년 후에 어머니 문정왕후마저 세상을 뜨자 병약했던 명종은 병을 얻어 1567년(명종 22)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에서 승하하였다.

인순왕후仁順王后(1532~1575)는 청릉부원군 심강의 딸로 1543년(중종 38) 경원대군(명종)과 가례를 올리고 1545년(인종 1)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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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8월 12일 노원구 화랑로 681
(태ㆍ강릉:사적 201호)
오전 11시30분

정릉(貞陵) 조선 제1대 태조의 계비 신덕고황후의 능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1396)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태조의 계비이다. 신덕고황후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태조 이성계가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정치 영역을 넓혀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태조의 원비는 신의고황후였으나 태조 즉위 전인 1391년(고려 공양왕 3) 세상을 떳기 때문에 신덕고황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되었다.

신덕고황후는 태조와 원비 신의고황후 사이의 장성한 여섯 아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성공했을 정도로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아들과 경순공주를 두었으며 태조는 신덕고황후를 극진히 사랑했다고 전한다. 1396년(태조 5) 병환으로 승하했으며, 태조는 신덕고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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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9월 23일 성북구 성북구아리랑로19길 116
(정릉:사적 208호)
오전 11시30분

의릉(懿陵) 조선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

경종景宗(1688~1724, 재위 1720~1724)은 제19대 숙종의 맏아들이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33세로 즉위했으나, 몸이 병약하여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했다. 즉위한지 두 달 만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4년간 재위한 후 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하였다.

선의왕후宣懿王后(1705~1730)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이다. 경종의 첫째 세자빈 단의왕후가 1718년(숙종 44) 승하하자, 같은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722년(경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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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0월 11일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의릉:사적 204호)
오전 11시30분

경릉(敬陵)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덕종德宗(1438~1457)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세조 1)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 20세에 요절했다. 의경세자(덕종)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으나 이후 그의 둘째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昭惠王后(1437~1504)는 좌의정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1455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471년(성종2)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內訓』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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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음력 9월 2일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서오릉)
오전 11시30분

창릉(昌陵)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예종睿宗(1450~1469, 재위 1468~1469)은 제7대 세조의 둘째 아들이다. 세자였던 형(의경세자, 덕종)이 갑자기 죽자 19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병약했던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만에 요절하였다.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각 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안순왕후安順王后(?~1498)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가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숨을 거두자 세자빈이 되었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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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월 9일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서오릉)
오전 11시30분

명릉(明陵) 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숙종肅宗(1661~1720, 재위 1674~1720)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1674년에 현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숙종 대의 조선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쟁이 심했지만, 숙종은 각 붕당의 정쟁 위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체제 전반을 정비하는 큰 공적을 남겼다.

인현왕후仁顯王后(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승하하자 1681년(숙종 7)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첫째 계비가 되었다. 인현왕후는 희빈 장씨의 모함으로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 때 복위되었다. 인원왕후仁元王后(1687~1757)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인현왕후가 승하함에 따라 1702년(숙종 28)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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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7월 13일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서오릉)
오전 11시30분

익릉(翼陵)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1년(현종 12) 11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1674년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떳다. 슬하에 공주 둘을 두었으나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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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2월 16일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서오릉)
오전 11시30분

홍릉(弘陵)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정성왕후貞聖王后(1692~1757)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704년(숙종 30) 숙종의 둘째 아들인 연잉군(영조)과 가례를 올렸다. 1724년(경종 4) 경종이 승하함에 따라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평생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켰다. 1757년(영조 33)에 소생 없이 66세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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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3일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서오릉:사적 198호)
오전 11시30분

희릉(禧陵)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의 능

장경왕후章敬王后(1491~1515)는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로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가 아버지 신수근의 문제로 폐위되자 1507년(중종 2) 왕비가 되었다. 1515년 인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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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3월 26일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서삼릉:사적 200호)
오전 11시30분

효릉(孝陵) 조선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

인종仁宗(1515~1545, 재위 1544~1545)은 제11대 중종의 맏아들로 1544년 중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역대 조선 왕 중 재위기간은 가장 짧지만 지극한 효심과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아버지 중종이 병이 나자 밤낮으로 옆을 지키며 관과 띠를 풀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고, 중종이 승하하자 며칠간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다섯 달 동안 곡을 했다고 한다. 인종은 재위 9개월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승하했다.

인성왕후仁聖王后(1514~1577)는 금성부원군 박용의 딸로, 1524년(중종 19)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544년에 인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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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8월 18일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서삼릉:사적 200호)
오전 11시30분

예릉(睿陵)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장황후의 능

철종哲宗(1831~1863, 재위 1849~1863)은 사도세자(장조)의 증손자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제24대 헌종이 세상을 떠난 뒤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자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었다. 19세에 왕이 된 철종은 처음 3년 동안 순원숙황후(순조의 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이후 직접 정치를 하였다. 안동 김씨 세도가 극에 달해 국가재정의 근본을 이루는 삼정이 문란한 상황이었으나 철종은 삼정이정청三政釐政廳이라는 특별 기구를 설립하여 삼정의 문란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등 민생 안정을 위한 노력을 펼쳤다.

철인장황후哲仁章皇后(1837~1878)는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딸로 1851년(철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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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월 16일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서삼릉:사적 200호)
오전 11시30분

온릉(溫陵) 조선 제11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의 능

단경왕후端敬王后(1487~1557)는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로 1499년(연산군 5) 진성대군(중종)과 혼인해 부부인이 되었다. 1506년 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반정 당시 좌의정이었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으로 살해되고, ‘죄인의 딸이 왕비로 부적하다’는 반정공신들의 주청으로 단경왕후는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서인되어 궁 밖으로 쫓겨난다. 소생 없이 71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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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월 6일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온릉:사적 210호)
오전 11시30분

파주 장릉(長陵) 조선 제16대 인조와 원비 인렬왕후의 능

인조仁祖(1595~1649, 재위 1623~1649)는 제14대 선조의 손자이자 정원군의 아들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하여 광해군과 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 이괄의 난(1624, 인조 2),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이 일어났고, 병자호란에 패해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排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을 겪었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 수어청 등을 신설하고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을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신설하였다.

인렬왕후仁烈王后(1594~1635)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1610(광해군 2)에 능양군(인조)과 가례를 올렸고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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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6월 17일 파주시 탄현면 탄현면 장릉로 90
(장릉:사적 203호)
오전 11시30분

공릉(恭陵) 조선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능

장순왕후章順王后(1445~1461)는 세조 대의 공신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로 1460년(세조 6)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461년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을 앓다가 17세 나이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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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월 14일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공ㆍ순ㆍ영릉)
오전 11시30분

순릉(順陵) 조선 제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능

공혜왕후恭惠王后(1456~1474)는 세조 대의 공신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로 장순왕후와 자매 사이이다. 1467년(세조 13) 12세의 나이로 자을산군(성종)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성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474년(성종 5) 자녀 없이 19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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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5월 9일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공ㆍ순ㆍ영릉:사적 205호)
오전 11시30분

영릉(永陵) 추존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능

진종眞宗(1719~1728)은 제21대 영조의 맏아들로 1725년(영조 1) 7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고 1727년(영조 3) 가례를 올렸으나 10세에 세상을 떴다. 영조는 진종(효장세자)의 이복동생 사도세자를 왕세자로 삼았으나 사도세자는 당쟁에 휩싸여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고 그의 아들 정조가 왕위를 이었다. 정조가 즉위함에 따라 효장세자는 양부養父로서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1715~1751)는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딸로, 1727년(영조 3) 9월 27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진종이 죽고난 뒤 37세까지 살다가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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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2월 15일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공ㆍ순ㆍ영릉:사적 205호)
오전 11시30분

김포 장릉(章陵)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

원종元宗(1580~1619)은 제14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추존되기 전의 군호는 정원군이다. 첫째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에 봉해졌고 1632년(인조 10) 왕으로 추존됐다. 어렸을 때부터 용모가 빼어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아버지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올라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인헌왕후仁獻王后(1578~1626)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1590년(선조 23) 정원군(원종)과 가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1632년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됨에 따라 인헌왕후로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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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2월 2일 김포시 장릉로 79
(장릉:사적 202호)
오전 11시30분

융릉(隆陵)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의 능

장조莊祖(1735~1762, 사도세자)는 제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의 생부生父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났으나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를 보게 되면서 노론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나경언의 고변으로 결국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762년 영조는 28세 나이에 죽은 세자를 슬퍼하면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존호를 장헌으로 올렸고 1899년(광무 3) 에 장조로 추존되었다.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1735~1815, 혜경궁 홍씨)는 영의정 영풍부원군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사도세자가 세상을 뜬 후 혜빈, 정조 즉위 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다. 혜경궁 홍씨의 자전적 회고록이자 궁중문학의 백미라고 평가받는『 한중록』을 남겼다.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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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7월 12일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융ㆍ건릉:사적 206호)
오전 11시30분

건릉(健陵) 조선 제22대 정조와 효의선황후의 능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는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1776년 제21대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하고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 문무를 겸비했던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쓰고,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쌓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또한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붕당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힘썼다.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1753~1821)는 좌참찬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영조 38) 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성으로 모셔서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제향일 안내

일시 장소 시간
매년 음력 6월 28일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융ㆍ건릉:사적 206호)
오전 11시30분

제릉(齊陵) 조선 제1대 태조의 원후 신의고황후의 능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께서는 조선 제1대 太祖高皇帝의 后이시다. 황후께서는 고려말기「 贈 領門下府使 安川府院君 景敏公卿」의 딸로 고려 충숙왕 6년(1337년) 丁丑에 탄강하셨다. 태조고황제와의 슬하에 鎭安(芳雨), 永安(定宗大王), 益安(芳毅), 懷安(芳幹), 靖安(太宗大王), 德安(芳衍)의 6남과 慶愼, 慶善공주의 2녀를 두시고 恭讓王 3년(1391년) 辛未 9월 23일 丁未에 춘추 55세로 승하하였다. 조선 개국(1392년 7월) 이전에 승하하였기에 單陵으로 봉릉하고 조선개국 이후에 추존하여「 齊陵」으로 명명하였다. 처음 시호는 태조께서 즉위한 후 諡를 節妃라 하였고, 1398년 정종대왕이 즉위한 후「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추존되었으며 태종대왕 8년에「 承仁順聖」으로 徽號하였고, 대한제국 성립 후1899년 고종황제(광무 3년)에 의해 皇后로 추존되었다. 경복궁 내에「 文昭殿」에서 單位로 享祀를 올리다가 신주를 부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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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0월 29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내 건원릉 정자각)
오전 11시30분

후릉(厚陵) 조선 제2대 정종대왕과 정안왕후의 능

정종(定宗, 1357~1419)은 태조고황제와 신의고황후의 둘째 아들로 함흥의 귀주동(歸州洞)에서 탄강하셨다. 휘(諱)는 방과(芳果), 자(字)는 광원(光遠)으로 국왕이 된 후 휘(諱)를 경(曔)으로 고쳤다.

1398년(태조7) 영안군은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9월 5일에 태조의 선위(禪位)로 국왕이 되었다. 1400년(정종 2) 2월에 정안군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1400년 11월 11일에 정안군에게 선위했다. 태종은 정종에게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이란 존호를 올렸다. 1419년(세종1) 9월26일 인덕궁(仁德宮)에서 승하하였으며, 1419년 12월에 세종은 온인공용 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란 시호를 올리고 능호를 후릉(厚陵)이라 했으며, 1420년 1월 3일, 후릉에 예장하였다. 1420년 4월에 시호를 공정온인 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으로 고쳤다. 1681년(숙종7)에 숙종은 정종(定宗)의 묘호를 올리고, 의문장무(懿文莊武)란 시호를 추가로 올렸다.

정안왕후(定安王后, 1355~1412)는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의 딸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1398년 정안군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덕빈(德嬪)에 봉해졌고, 정종이 즉위하면서 덕비(德妃)에 봉해졌다. 1400년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란 존호를 받았다. 1412년(태종 12) 6월 25일 인덕궁에서 승하하였고, 7월 20일에 태종이 정안왕후란 시호를 올리고 능호를 후릉(厚陵)이라 했다. 1412년 8월 8일에 후릉에 예장하였다. 1681년(숙종7) 11월에 숙종은 온명장의(溫明莊懿)란 시호를 추가로 올렸다.

후릉은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흥교리에 있는데, 북한의 행정구역으로는 개성시 판문군 영정리이다. 후릉은 1412년 정안왕후가 승하했을 때 처음 조성되었으며 1420년 정종이 승하하면서 후릉은 쌍릉이 되었는데, 우왕 좌비(右王左妃)의 배치를 하고 있다. 후릉은 송악산(松岳山)을 주산으로 하고 그 능선을 이은 언덕[坎山]에 전통적인 풍수형국 속에 입지하고 있다.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는 형태로 정남에서 서측으로 계좌정향(癸坐丁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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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0월 24일 구리시 동구릉로 197
(동구릉 내 건원릉 정자각)
오전 11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