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79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만증(萬增) 1678∼1751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사능(士能), 호는 포와(圃窩). 선성군의 9대손이고 시재(時材)의 현손이다.
 공은 어렸을 때 이름이 알려져 세상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향리의 추천에 세 번 뽑히고 검교(檢校) 의망(擬望)에 다섯 번 참여하였으며 장수 천거에 이름이 들어갔다. 1726년(영조 2)에 금부도사에 제수되었고 사옹원 · 사헌부의 벼슬도 역임하였다.
 공이 지방에 수령으로 나아가서는 청렴하고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여 그곳을 떠난 뒤에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관직은 행 통훈대부 진잠현감 겸 진주진관 병마절제도위에 이르렀다.
망운(望雲) 1659∼?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장원(章遠), 선성군의 9대손이고 도성수의 7대손이며 명상의 아들이다.
 1684년(숙종 10)에 과거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 · 삼수현감 · 고부현감 · 임실현감 · 통정대부 군위현감 · 수안군수 등을 거쳤다. 삼수현감 때에는 양곡을 비축하여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사업을 벌였는데 이 일이 왕에게 알려져 옷감 안팎감을 특별히 받은 적이 있었다. 연대 미상 6월 9일에 별세했다. 문경 당포리 분통곡(粉通谷)에 신도비와 상석이 있다.
명상(明翔) 1854∼1939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경소(景昭), 호는 해운(海雲=芸). 선성군의 16대손이며 노저 양원의 12대손이다. 물헌공(勿軒公)의 동생이다. 북두칠성을 먹는 태몽을 꾸고 태어나 대단히 총명했다. 형에게 글을 배웠는데 놀기만 하다가도 배운 내용을 암송해 내어 남들을 감탄게 하였다고 한다.
 1891년(고종 28) 사마시에 급제, 1894년 동학란에 순무사(巡撫使)가 되어 난을 안무(按撫)하여 민심을 진정, 1895년 고종태황제의 비서, 1896년 형사국장, 1899년 동래부윤(東萊府尹), 1901년 평리원 재판장, 1902년 종정원경(宗正院卿), 1903년 상방사장(尙方司長)을 지냈다. 1905년 도승지로 재임할 때는 일본과의 조약체결을 반대하다가 진도(珍島)로 유배, 이후 은거, 독서 작문에 전념하였다.
 선성군 신도비문을 찬했다. 묘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강장리 장군봉하에 있다. 아들 정로(正魯 : 鼎魯)는 자 망정(望定), 호 화산(華山)이었으나 절손되었다.
 저서로는 <해운집(海芸集)> 6책이 전한다.
명상(命相) 1635∼?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자경(子卿), 선성군의 6대손이고 경흥감의 현손인 판돈녕부사 세무(世茂)의 손자이다. 1662년(현종 3)에 무과에 급제했다. 1669년(현종 10) 내금위의 진위건공장군(振威建功將軍), 1684년(숙종 10) 통훈대부 행 덕천현감 겸 성천진관 병마절제도위, 1691년(숙종 17) 진도군수 · 장흥진관병마동첨절제사, 1694년(숙종 20) 절충장군 · 혜산진병동첨절제사를 역임했다. 연대 미상 1월 20일에 별세했다.
명오(명오) 1750∼1836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사율(士律), 호는 박옹(泊翁). 선성군의 10대손이며 우념재 봉환의 아들이다. 통정대부첨지에 이르렀고 학문이 뛰어났다. <박옹문집(泊翁文集)> 4책이 전해지고 있다.
명운(溟運) 1583∼ ?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구만(九萬), 호는 천지(天池). 선성군의 6대손이며 준도의 손자, 집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 진사에 입격, 1616년(광해군 8)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의정부 사인 · 홍문관 교리에 이르렀으나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낙향하여 오직 부모에게 효성으로만 섬기다가 생을 마쳤다.
명익(明翊) 1848∼1903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경설(京卨), 호는 물헌(勿軒). 노저 양원의 12대손이다. 내부협판 용화의 아들이며 종정원경을 지낸 명상의 형이다. 학문이 높아 문도가 수백인이며 종친부 참봉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수당(修堂) 이남규 선생도 공의 문하인이라고 한다. <물헌집(勿軒集)> 3책이 전해진다. 양자 태로(泰魯)가 있으나 조졸하고 외딸은 여주인 이덕구에게 출가했다. 묘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봉곡사 좌록 건좌에 있다. 다수의 저서는 국립중앙도서관 및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있다.
문백(文白) 1635∼?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군욱(君郁), 위방의 아들이다.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통정대부, 평안도 가산군수와 여산부사를 지냈다. 특히 1692년(숙종 18) 임금에게서 납약 한 봉투, 호초 3되, 궁대(弓팳) 한 갑, 화살 한 장, 장전(長箭) 1부, 편전(片箭) 1부, 통아(筒兒) 한 개 등을 하사받았다.
방영(邦榮) 1725∼1802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군경(君慶), 호는 양한재(養閑齋). 선성군의 11대손이고 충신 세마공 시경의 6대손이며 집의공 종영의 아우이다.
 두 형제는 1759년(영조 35) 식년 문과에 같이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계자가 주석(周奭)이다.
백영(百榮) 1773∼1819    파명:선성군(宣城君)
  자는 성사(聖斯), 호는 종포(種圃). 선성군의 11대손이고 노저 양원의 7대손이다.
 1813년(순조 13)에 생원 ·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문장이 출중하여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 노저의 봉사손 지형의 아들이다.
 저서로는 <종포집(種圃集)> 2권이 전한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 구운산 묘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