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군파 4세 약사에는 총 3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경흥감(慶興監) 1516∼?    파명:선성군(宣城君)
  휘는 수백(壽伯), 선성군의 증손이다. 도성수(陶城守)의 손자로 1545년(인종 1)에 대윤(大尹) 윤임(尹任)과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과의 싸움에서 소윤 일파가 을사사화를 일으켜 평소 반목하던 사람을 숙청하고 윤임의 아들 3형제 등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 때 경흥감은 난을 피하여 경상도 순흥군 수민면 문단리(지금의 봉화군)로 가서 생을 마쳤다. 이후 자손들이 이곳에 정착케 됐다.
숙령감(肅寧監) 1544∼1592    파명:선성군(宣城君)
  휘는 윤신(胤信), 초휘는 연령(延齡). 선성군의 증손이고 도성수의 손자이다. 창선대부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개성에서 의병 50∼60명을 결성하고 왜병과 맞서 싸우다 순국했다.
의령도정(義寧都正) 1526∼1571    파명:선성군(宣城君)
  휘는 윤조(胤祖), 선성군의 증손이며 도성수의 손자이다. 창선대부 의령감, 증 명선대부 의령도정이다. 모친이 엄동(嚴冬)에 미나리가 먹고 싶다고 하니 동대문 밖에 나가 언땅을 파헤쳐 미나리를 해드릴 만큼 효행이 지극한 것으로 이름났다.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 1493∼1563)의 문인이고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교우가 깊었으며 송강(松江) 정철(鄭澈) 등과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학문을 크게 이룰 나이에 요절했다. <송강일록(松江日錄)>에 다시 보기 힘든 사람으로 공이 등장한다. <율곡만시(栗谷輓詩)>에도 공을 기리는 시가 남아 있다. 아들은 문장이 뛰어난 체소재(體素齋) 춘영(春英)이다. 공은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 1497∼1579)의 사위이기도 하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