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공파 현조약기에는 총 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태규(泰圭) 1902∼1992    파명:주부공(主簿公)
  1902년 충남 예산에서 한학자인 용균(容均)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919년 경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1924년 일본 광도고등사범학교, 1927년 일본 경도제국대학 화학과를 졸업, 1931년 동대학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7년 경도제국대학 조교수, 1939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환교수로 도미,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경도제국대학에 귀교, 1943년 동대학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어 귀국, 경성대학 이공학부장,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초대 문리과대학장과 대한화학회 초대회장, 1948년∼1973년까지 미국 유타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1958년에 미국화학회 명예상패를 받고, 1960년 국제원자력기구총회 한국수석대표, 1964년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서울대 · 고려대 · 서강대 명예이학박사, 1965년 노벨상 추천위원으로 위촉받기도 하였다.
 197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1973년 한국과학원 종신교수직과 석학교수로 박사과정의 학생을 지도하였다.
 전생애를 통해 일본에서 25년, 미국에서 27년, 모두 52년간을 해외에서 살면서 한국인의 국적을 고수해 온 세계적인 학자로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6백여 편에 달한다.
 당시 황무지 상태에 있던 이 땅의 과학을 하루 빨리 국제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겠다는 신념에 불타 오로지 학문탐구에만 근면으로 일관,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본받고자 하는 구원의 스승을 보였던 것이다.
 1992년 과학원에서 박사과정의 학생들과 마지막까지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다가 같은해 10월 26일에 대전에서 작고, 사회장으로 국립묘지 국가 유공자 제2묘역에 안장되고 묘지내 유물전시관에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