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군파 4세 약사에는 총 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봉산군(鳳山君) 1516∼1581    파명:정석군(楨石君)
 봉산군(鳳山君) [1516(중종 11)∼1581(선조 14)]
 휘는 복수(福壽), 다인도정 근(僅)의 아들이며, 배위는 영산신씨 참봉 억령(億齡)의 딸이다. 묘소는 평산 검복동에 있다.
신계군(新溪君) 1494∼1568    파명:정석군(楨石君)
 신계군(新溪君) [1494(성종 25)∼1568(선조 1)]
 휘는 가(佳), 횡천도정(橫川都正) 겸(慊)의 아들이며, 처음 부령(副令)이었고 인조대왕 때 봉군(封君)되었다. 배위는 단성문씨 첨사 후종(後種)의 딸이다.
양천군(陽川君) 1529∼1588    파명:정석군(楨石君)
 양천군(陽川君) [1529(중종 24)∼1588(선조 21)]
 휘는 봉수(鳳壽), 신계군 가(佳)의 아들이며, 인조대왕이 신하를 보내 제사지내게 하고 치제문을 하사하였다. 배위는 청주양씨 동지중추부사 예수(禮壽)의 딸이다.
왕천군(川君) 1477∼1528    파명:정석군(楨石君)
 왕천군( 川君) [1477(성종 8)∼1528(중종 23)]
 휘는 견(堅), 허천도정(虛川都正) 유(愉)의 아들이며, 처음 품계는 영(令)이었는데 1658년(효종 9) 대왕이 영릉(英陵) 행행(行幸)시 명선대부(明善大夫) 왕천군에 추증하고 신하를 보내 제사지내게 하였다.
 1866년(고종 3)에 왕천군 후손이 절손되어 거성부수 손자인 낙주감(洛州監) 현(賢)을 입양하여 종손을 이어왔다. 배위는 연일정씨 여신(汝信)의 딸이며, 신부인(愼夫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