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군파 약사

정석군(貞石君)


정종대왕(定宗大王)의 14남이며 휘는 융생(隆生)이며 호는 정석(貞石)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어머니는 숙의(淑儀) 행주기씨(幸州奇氏)로 공조전서(工曹典書) 기면(奇勉)의 딸이다. 공은 숙의 기씨의 4남 중 셋째로 인덕궁(仁德宮)에서 태어났다.

도덕을 근원으로 수학하였으며 문장이 수절(秀絶)하고 재덕 또한 높아서, 묘당(廟堂)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매번 겸손히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심성이 정고하기를 금석과 같다(貞固之性 金石之心)' 해서 `정석'이라고 작호를 하사받았다.

공은 단종대왕이 양위하고 유배되니 매우 통탄해 하고 풍덕군 동흥면에서 부친의 능인 후릉(厚陵) 가까이 은거하여 벼슬길을 단념하고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공은 1464년(세조 10) 10월 10일 별세하여 광주군 장이촌에 장례를 모셨다.

배위는 충원군부인(忠原郡夫人)이며 충주권씨(忠州權氏) 직장(直長) 돈(墩)의 딸로 1408년(태종 8) 2월 13일 태어나 1474년(성종 5) 10월 10일 66세로 별세했다. 동원합부로 모셨으나, 근년에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 산20번지로 면례하여 모셨다.

1872년(고종 9)에 가덕대부 영종정경부사로 봉작봉군되고, 시법(諡法)에 따라 `관락영종왈(寬樂永終曰) 정(靖)의 정(靖)자'와 `소심공신왈(小心恭愼曰) 희(僖)의 희(僖)자'를 써서 `정희(靖僖)'로 시장(諡狀)에 기록하고, 배위도 충원군부인(忠原郡夫人)으로 법전봉작(法典封爵) 하였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허천도정(虛川都正) 유(愉), 차남은 거성부수(車城副守) 연(憐), 3남은 마천부수(馬川副守) 이(怡), 4남은 횡천도정(橫川都正) 겸(慊)이다.


종원 분포 상황

지역
세대수
인구수
서울시
25
100
대구시
50
200
인천시
40
160
경기도
30
120
경상남도
10
40
경상북도
210
850
전라남도
50
200
전라북도
25
100
충청남도
20
80
충청북도
20
80
합계
48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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