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대왕 - 세조의 정통성 확인
제 8대조   이름(한글):예종대왕   이름(한자):睿宗大王

세조의 정통성 확인

 조선 전기 특히 단종에서 세조로, 세조에서 예종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을 살펴 본다면, 전자는 앞서 밝힌 개혁과 강화로 이어지는 단계였으며 후자의 경우는 그 확인을 위한 노력의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종은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확인하고 왕실의 위상을 분명히 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먼저 세조의 묘호를 정하는데 있어서 나타나고 있다. 예종이 즉위한 달인 9월 경진일의 실록기사를 보면, 정사를 대리하는 정승 영성군 최항과 도승지 권감에게 지시하기를,

“돌아간 임금은 존호를 미처 올리기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므로 슬픈 마음이 그지 없다. 이제는 시호를 빨리 올리려고 한다. 옛날에는 초상난 달이 바뀐 다음에 시호를 정하였다. 이것은 자식으로서 자기 부모를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뜻이었지만 그러나 이미 염도 하고 빈전도 꾸리었으니 이제야 더 무엇을 말할 것이 있겠는가. 존귀한 시호를 빨리 올리자는 것이 대비나 나의 간절한 소원이다.”

라고 하여 시호를 올릴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최항 등은 옛 제도를 참고하여 아뢰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종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올린 묘호와 혼전 및 능호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조 자신도 물론 자신이 재위한 것에 대해 말년에 이르러 그 계통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비쳤지만 그것은 겸사의 표현일 수도 있었다. 세조 자신이 이룩한 업적은 왕권의 강화 뿐만이 아닌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있는 것이었고 묘호나 능호 등은 이러한 그의 업적을 바탕으로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이러한 의미를 포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역대 군왕의 경우 대부분 이 방식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예종이 신하들이 올린 안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예종대왕 - 세조의 정통성 확인 (2)
예종대왕 - 세조의 정통성 확인 (3)
예종대왕 - 세조의 정통성 확인 (4)
예종대왕 - 왕권의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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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대왕 - 직전제의 시행과 지방통치
예종대왕 - 직전제의 시행과 지방통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