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풍대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월성군(月城君) ? - ?    파명:완풍대군(完豊大君)
  휘는 명인(明仁). 대군의 증손이며, 여양군의 장남으로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돈녕부(敦寧府) 주부(主簿)를 거쳐 1428년(세종 10) 부사정(副司正)이 되었으나 권귀(權貴)의 길을 싫어하여 어머니 정부인 김씨를 모시고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 사미정(四美亭)을 짓고 유유자적하였는데 검소한 태도와 효도가 극진하여 부민(府民)의 우러름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공의 행실을 칭찬하여 전토(田土)를 하사하였다. 사미정을 읊은 시가 <하서집(河西集)>에 나온다.
 1872년(고종 9)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월성군 겸 종정경에 추봉되었다.
 묘소는 전남 담양군 월산면 홍암리 능동에 있고 신도비도 있다. 묘장서원에 배향되었다.
월평군(月坪君) 1400∼1492    파명:완풍대군(完豊大君)
 월평군(月坪君) [1400(정종 2)∼1492(성종 23)]
 휘는 종인(宗仁). 세조대왕 때 원종공신(原從功臣)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지냈다.
 대군의 증손이며 양도공의 손자이고 여양군의 차남으로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정부인 김씨를 따라 담양으로 낙향하여 외가인 월성부원군 별저(別邸)에서 수학하며, 담양 서쪽 양각리에 지은 사미정을 중심으로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시정(詩情)을 다듬고 포부를 키워 나갔다. 이윽고 조정의 부름을 받아 1454년(단종 3)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서 우령호군(右領護軍)을 지낼 때 대가(大駕)를 호위한 공이 커 원종공신과 개성유수에 제수되었으며, 1458년(세조 4)에는 화상 및 포총교지(褒寵敎旨)를 받았다.
 1605년(선조 38)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872년(고종 9)에 자헌대부 지의금부사 종정경 월평군에 추봉되고 부조(不?)를 명받았다. 후손들은 사우(祠宇)를 창평(昌平)의 궁암(弓岩)에 세워 춘추로 향사해 오다가 근래에 양력 5월 5일로 제일을 바꾸었고, 1990년 노후된 사우를 바로 옆 새로운 자리에 신축하여 옮겼다.
 양위의 유택은 당초 담양군 월산면 홍암리에 있었으나 거듭되는 병화와 재난으로 실전되어 1873년(고종 10) 12대손인 진사 이필(以?)이 주관하여 선비(先쯼)묘소의 백호등에 단을 쌓고 입비하고 1977년 후손들이 묘역을 넓혀 새로 단장하였다.
 배위 정부인 여흥민씨는 판서 용(王庸)의 딸로 형근(亨根) · 형정(亨楨) · 형지(亨枝) 등 3남을 두었다.
 단은 전남 담양군 월산면 홍암리 능동에 있고, 부조묘는 담양군 수북면 고성리 궁암에 있다.
월풍군(月豊君) ? ∼ ?    파명:완풍대군(完豊大君)
  휘는 수인(壽仁). 대군의 증손자이며 여양군의 4남이다.
 상호군(上護軍)과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1872년(고종 9) 가선대부 형조참판에 증직되고 월풍군 겸 종정경에 추봉되었다.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지장사(芝庄祠)에 모셔졌다.
 묘단은 전남 담양군 월산면 홍암리에 있다.
진릉군(晋陵君) 1400∼1470    파명:완풍대군(完豊大君)
  휘는 세문(世門), 초휘는 영문(榮門)이고 대군의 증손이며 완남군의 손자이다.
 1423년(세종 5) 계묘방(癸卯榜) 병과(丙科)에 등제하고 중훈대부 행 사헌부 집의 · 의정부 검상 사인을 거쳐 1453년(단종 1) 함길도 도진무사(都鎭撫使)가 되었다.
 1456년 이 후 양양에 입거, 종신자적하였다.
 공이 함길도 도진무사로 있을 때의 일화이다.
 계유정난(癸酉靖亂)이 일어났을 때, 경성부사(鏡城府使) 이경유(李?田柔)가 몰래 무기를 옮겼는데 공이 이를 단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절제사(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과 함께 탄핵을 받아 공은 강원도 삼척으로 귀양갔다. 그러나 이징옥이 귀양지로 떠나지 않고 급기야 모반할 때, 종성(鍾城) 고을의 교수(敎授) 이선문(李善門)으로 하여금 반역을 일으키는 격문의 우두머리 작성자로 삼았다. 나중에 이 일이 발각되어 승지가 임금에게 보고할 때 이선문을 이세문으로 발음을 잘못하여 공이 반역문의 주모자로 몰린 일이 있다. 그러나 공의 차남 승복(承福)이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1486년(성종 17) 바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