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군파 약사

임해군 진(콫 : 1572∼1609)


자가 국진(國鎭)으로 선조대왕의 1남으로 태어났다. 공빈(恭嬪) 김씨 소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화군(順和君)과 동북지방으로 피난가서 가또오(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609년(광해군 1)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 이이첨 · 정인홍 등이 모해하여 이복동생인 영창대군 · 국구(임금의 장인) 김제남과 함께 역모죄로 몰려 강화도 교동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향년 38세였다. 처음에는 수원의 광교산(光敎山)에 장례했다가 인조반정 후 특명으로 신원되어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 산52-14 축좌에 이장했다.

배위는 양천허씨로 부제학 명(銘)의 딸이다.  4세 일람

그러나 자식이 없어 선조의 9남 경창군(慶昌君)의 차남 양녕군(陽寧君) 경(儆)을 양자로 삼았다. 양녕군은 배위 남양홍씨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익풍군(益豊君) 속(涑)을 낳았다. 양녕군은 26세로 별세했다. 익풍군은 배위 임천조씨와의 사이에서 1남 1녀, 풍천임씨와의 사이에서 1남을 두었다. 그러나 익풍군은 30세에 별세했다. 익풍군의 장남 임원군(林原君) 표(杓)가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정엽(廷燁) · 정영(廷煐) · 정섭(廷燮) 형제가 출세하여 오늘날의 임해군파를 형성하고 있다.

임해군파는 현재 전국에 2백여 명의 종원들이 있다.

임해군파의 현조들로는 호조정랑과 공조정랑을 지낸 분이 각각 1명씩 있고, 기타 낮은 벼슬은 더러 있다. 그리고 참봉 7명, 생원 4명, 진사 3명 등이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璿源續譜

종원 분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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