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릉대군파 약사

함릉대군


휘는 고태(古泰)이고, 익조대왕의 제6남이다. 어머니는 정숙왕후 등주최씨이다.

배위는 실전(失傳)되어 기록에 없다. 묘소는 함흥 북연화동에 있는데 신도비가 있고 사당이 있다.

1872년(고종 9) 대군 종정경부사로 추봉되고 4세에게도 군으로 습봉되었다. 이 함릉대군파들은 함흥 · 영흥을 중심으로 해서 정평(定平) · 고원(高原) · 문천(文川) · 안변(安邊) · 홍원(洪原) · 이원(利原) 등 함경남도에 주로 퍼져 살았다. 그리고 일부는 황해도 금천(金川)으로, 또 강원도 회양(淮陽) · 통천(通川) · 강릉(江陵)에까지, 일부는 경기도 장단(長湍)에도 살고 있었다.

이 파의 현조(顯祖)로는 함릉대군의 손자인 단양군 준이 개국공신에 들어 한성판윤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가선대부가 2명인데, 삼봉(三奉 : 1704∼?) · 귀빈(貴彬 : 1681∼1729)이요, 통정대부는 12명인데 운성군 열(悅) · 종성군 실(實) · 승박(承朴 : 1614∼1657) · 윤좌(允佐 : 1714∼1799)와 인흥(仁興 : 1692∼1777) · 성록(成祿 : 1729∼1805) 부자와 정수(廷秀 : 1668∼ ?) · 종달(宗達 : 1662∼ ?) · 창수(昌壽 : 1808∼ ?) · 보명( 明 : 1834∼ ?) · 종욱(宗旭 : 1799∼ ?) · 철록(哲祿 : 1800∼ ?) 등이다. 그리고 중훈 대부(中訓大夫)로는 경신군 조(助)가 있다. 또 사헌부 감찰 종순(鍾洵 : 1833∼1891) · 문규(文奎 : 1824∼?)가 있고, 감찰 겸 주부 상희(尙熙 : 1749∼?)가 있다. 음사(蔭仕)로 직장(直長) 중혁(重赫)이 있고, 별천(別薦)으로 첨사(僉使) 검소(儉蘇)가 있다.

또 진사(進士)는 학응(學膺) · 종두(鍾斗) · 경숙(慶淑) · 양완(陽玩) 등 4명, 참봉(參奉)은 득수(得守) · 시영(時英) · 봉춘(逢春) · 광달(光達) · 용태(龍泰) · 성(晟) · 정무(廷武) · 희국(希國) · 승업(承業) · 종혁(宗赫) · 좌빈(佐彬) · 종욱(宗郁) · 종헌(宗憲) · 종익(宗益) · 계림(啓林) · 대성(大成) · 이태(伊泰) · 응호(應浩) 등 18명이다.

무과급제자는 문방(文方), 권관(權管)을 지낸 영(英) · 춘기(春起) · 병종(炳宗) 등 4인이다. 최고 무직으로 절충장군에 여근(汝根 : 1664∼1772), 어모장군에 순남(順南 : 1510∼1581)이 있고, 현신교위(顯信校尉) 사수(士秀), 돈용교위(敦勇校尉) 광손(光孫), 승의부위(承義副尉) 주(柱)가 있고, 훈련원 판관(判官)에 위(位 : 1696∼1759)가 있고, 부사과(副司果)에 걸(傑 : 1694∼1760)이 있다. 이 외에 효행정려(孝行旌閭)를 받은 사람으로 상열(相烈 : 1809∼?)이 있다.

현대 인물로는 두환(斗煥) 판사 형제가 있다. 다음은 <선원속보>를 만들 때 임원이다.

종손(宗孫)은 기록(基祿), 문장(門長)은 응환(應煥), 도유사(都有司)는 규섭(奎燮), 교정유사(校正有司)는 달훈(達勳) · 반응(泮膺) · 지헌(之憲), 선서유사(繕書有司)는 동극(東極) · 문섭(文燮) · 명혁(命爀) · 제봉(濟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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