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녕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0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경렬(慶烈) 1767∼1822    파명:근녕군(謹寧君)
  초휘는 영렬(永烈), 창성군의 9대손이며 근형(近亨)의 아들이다. 1811년(순조 11) 경과 정시 병과에 급제, 지평(持平)을 지냈다.
 배위는 양주조씨 헌경(憲慶)의 딸과 원주원씨 필주(必周)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천안시 상리 견총지 해좌이다.
담(湛) 1765∼ ?    파명:근녕군(謹寧君)
  효행으로 유명하여 충청감사 김병시(金炳始)의 상주로 1873년(고종 10) 예조에서 정려문을 세웠다. 정문을 세울 때 목재와 목수는 관에서 지급하고 후손에게는 잡역을 금하도록 하였다.
 배위는 서원서씨 종원(宗元)의 딸과 선산김씨 제(濟)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청양군 목면 지곡리 유좌이다.
두광(斗光) 1691∼1777    파명:근녕군(謹寧君)
  근녕군의 10대손이며 덕림수의 7대손이고 요(?)의 증손이다.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해주최씨 일향(日向)의 딸과 전주최씨 세완(世完)의 딸이다.
 묘소는 전남 나주시 문평면 계도리 불로치 안산 간좌이다.
 학상(鶴相) [1858(철종 9)∼1936]
 자는 군화(群和), 호는 청전(靑田). 근녕군의 16대손이며 덕림수의 13대손이고 승수(承守)의 아들이다.
 1891년(고종 28) 정시 을과에 급제, 승문원 정자(正字) · 전적(典籍) · 기주관(記注官)을 지냈다. 한일병탄 후 의거에 자주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유고 3권이 전해지고 있다.
 배위는 나주임씨 기열(基烈)의 딸이다. 묘소는 동강면에 있다.
범(範) 1535∼1593    파명:근녕군(謹寧君)
  자는 숙도(叔度), 시호는 충렬(忠烈). 근녕군의 5대손이며 원강의 아들이다. 윤두수(尹斗壽)의 추천에 의하여 진사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1586년(선조 19) 진도군수가 되어 왜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 북청에서 우후(虞候)로서 왜적을 물리쳤다. 그러나 적의 수가 점차 늘고 아군은 고립되어 마침내 적에게 포위되어 잡혔으나 끝내 항거하다가 1593년 정월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장례를 치르게 했다. 후에 관북 사람들이 함흥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으며, 윤두수가 제문을 지어 올렸다.
 배위는 원주원씨 충량(忠良)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서산시 동암면 탄동의 묘좌원에 의관(衣冠)을 장하고, 전남 나주시 문평면 죽곡리에 사당이 있다.
승욱(承旭) 1854∼1894    파명:근녕군(謹寧君)
  호는 국헌(菊軒), 근녕군의 14대손이며 주호(周鎬)의 아들이다. 음사(蔭仕)로 전라도 순찰어사·선봉진 조달사·청주 안핵사 · 시종신을 지냈다. 배위는 영일정씨 원설(源卨)의 딸이다.
 묘소는 실전되었다.
요(?) 1606~1684    파명:근녕군(謹寧君)
  자는 여고(汝高), 호는 일암(逸庵). 근녕군의 7대손이며 범(範)의 손자이다.
 나주 문평면 죽곡리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기상이 남과 달랐다.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 밝았으나 영리를 도모하지 않았다.
 음직으로 충의위 정(正)이 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공은 오로지 후진 양성에만 정열을 쏟아 공의 문하에서 준수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벼슬이 자주 주어졌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남산에 정자를 짓고 회사정(懷思亭)이라 하니 이는 부조(父祖)를 생각할 일념으로 여겼던 것이다. 1682년(숙종 8) 조정에서는 이론에 의해 공에게 예조참의를 내렸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향년 79세로 임종할 때 자손에게 훈계하기를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응하지 말라.”하였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함평이씨이다.
 묘소는 전남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 우지 후록 묘좌이다.
원강(元綱) 1495∼1552    파명:근녕군(謹寧君)
  근녕군의 현손이며 덕림수(德林守)의 아들이다. 부호군(副護軍)으로 있다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을 거쳐 이조참의를 지냈다.
 배위는 성주현씨 윤명(允明)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내유동 건좌이다.
원개(元凱) 1506∼1566    파명:근녕군(謹寧君)
  비안정의 아들로 원굉의 아우이다. 광주목사를 지냈다. 배위는 순흥안씨 순필(舜弼)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내유동 내산 해좌이다.
원굉(元紘) 1492∼1544    파명:근녕군(謹寧君)
  근녕군의 현손이며 비안정(庇安正)의 장남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집의 ·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 지제교를 지냈다.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덕산이씨 번(藩)의 딸과 사천목씨 희증(希曾)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내유동 내산 건좌에 있다.
원징(元徵) 1673∼1717    파명:근녕군(謹寧君)
  근녕군의 9대손이며 금성수의 6대손이다. 어모장군 행 훈련원 판관을 지냈다. 배위는 밀양박씨 수영(秀映)의 딸이다.
 묘소는 웅천 2동 삼포 위 신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