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녕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7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도현(道顯) 1726∼1776    파명:온녕군(溫寧君)
  한산군의 9대손이며 자는 치문(穉文), 호는 계촌(溪村) 또는 간운(澗雲). 선(瑄)의 증손이다. 1776년(영조 52) 8월 8일 정조대왕에게 `김재로(金在魯) 당을 끝까지 다스려 세자로 계실 때의 원통함을 풀라\' 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정조대왕이 공을 불러 스스로 그 상소를 읽게 했다. 그 글에서 `만약 나라에 임오지변(壬午之變:1762년에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아사시킨 사건)이 없었더라면 전하께서는 오늘날 왕세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에 이르자, 정조대왕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 상소문이 법을 어긴 것이라 하여 죽임을 당했다. 1899년(광무 2) 황제의 특명으로 신원되고, 내부협판(內部協辦)에 추증되었다. 유고집이 전한다.
 장남 응원(應元)도 이에 관련되어 체포되어 국문을 받는데 임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직언을 했으므로 조신(朝臣)들의 간청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진성이씨로 세보(世輔)의 딸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내성면 삼계리 갑좌이다.
선(瑄) 1640∼1687    파명:온녕군(溫寧君)
  자는 봉언(奉彦), 호는 허직재(虛直齋). 한산군의 6대손이며 시항(時恒)의 장남이다. 1666년(현종 7) 진사에 급제, 문장으로 추천되어 첫 벼슬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되었다가 1683년(숙종 9) 광흥창(廣興倉) 부봉사(副奉事)가 되고, 그 해에 증광문과시 을과에 급제, 양사(兩司)를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
 1687년(숙종 13) 1월 24일 은계역(銀溪驛)에서 별세했다. 유고(遺稿) 2권이 있다.
 배위는 의성김씨 정(貞)의 딸과 강릉김씨 일명(一鳴)의 딸이다.
 묘소는 경북 예천군 서입석(西立石)의 건좌이다.
승일(承一) 1848∼1907    파명:온녕군(溫寧君)
  초휘는 희일(羲一), 온녕군 15대손이며 용성군 13대손으로 호영(好英)의 아들이다. 1888년(고종 25) 정시(庭試) 병과에 급제, 주서(注書)를 지냈다.
 배위는 당진한씨 원용(元容)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대전리 수옥동 승곡산에 있다.
시선(時善) 1625∼1715    파명:온녕군(溫寧君)
  자는 자수(子修), 호는 송월재(松月齋). 한산군의 5대손이며 영기(榮基)의 4남이다. 수직(壽職)으로 호군(護軍)을 지냈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하고 돌아와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학문에 힘써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에 <경서훈해(經書訓解)> · <칠원구의(漆園口義)> · <사선(史選)> · <서전삼평(書傳三評)> · <시전남과(詩傳濫課)> · <화화편(花華編)> 등 35권이 있다.
 배위는 숙부인 흥양이씨로 일규(一圭)의 딸이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 고계리 상현 계좌이다.
장(흳) 1696∼1737    파명:온녕군(溫寧君)
  자는 주여(舟汝) 또는 숙통(叔通), 호는 호산(毫山), 한산군의 8대손으로 인부(仁溥)의 아들이며 예조좌랑 선(瑄)의 손자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별시 병과에 급제, 양사(兩司)를 거쳐 병조정랑에 이르렀다. 지조가 곧고 문장이 날카로와 모두 큰 인물이 될 것을 기대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창의(倡義)하여 좌방장(左防將)을 지내기도 했는데 1737년(영조 13) 10월 4일 전라도 막관(幕館)에서 별세했다. 문집이 있다.
 배위는 남양홍씨 세동(世仝)의 딸이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동막골 선영 동쪽 진좌이다.
제형(齊衡) 1716∼1767    파명:온녕군(溫寧君)
  자는 군옥(君玉), 무풍군의 9대손이며 즙(콌)의 계자로 생부는 한필(漢弼)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 문과 병과에 급제, 정랑 · 판관을 지냈다.
 배위는 풍양조씨 명직(命稷)의 딸인데 1남을 두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국사동에 있다.
필옥(必玉) 1790∼1839    파명:온녕군(溫寧君)
  무풍군의 10대손이며 낙양수의 9대손으로 득달(得達)의 아들이다.
 1816년(순조 16) 식년 전시(殿試) 병과에 급제, 지평(持平)을 지냈다.
 배위는 남양홍씨 수현(守顯)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괴산군 불정면 문등 자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