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평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경(坰) 1685∼1753    파명:순평군(順平君)
  희하(熙夏)의 차남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장릉참봉 · 종묘 부봉사 · 상서원 부직 · 귀후서 별제 · 사헌부 감찰 · 의금부 도사 · 형조정랑 · 사재감 주부 · 전설사(典說司) 별제 · 현릉령(顯陵令) · 장례원(掌隸院) 사평(司評) · 정릉령(貞陵令) · 와서(瓦署) 별제 · 헌릉령(獻陵令) · 경산현감 · 금산군수 · 전라진관 병마동첨절제사 · 마전군수 · 진보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여흥민씨로 정랑 진원(震元)의 딸과 숙부인 안동권씨로 통덕랑 세익(世翊)의 딸이다. 슬하에 5남을 두었다.
계민(繼閔) ? ∼ ?    파명:순평군(順平君)
  선산부령의 셋째 아들이며 문과 지평(持平)을 지냈다.
 배위는 공인 인동장씨로 언기(彦琦)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당초 묘소는 인천시 신길동 개점암리에 있었으나 도시계획으로 선영계하에 모셨다.
계홍(繼洪) 1525∼1593    파명:순평군(順平君)
  선산부령의 차남이며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배위는 공인 의령남씨로 인(隣)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구빈(龜彬) 1795∼1874    파명:순평군(順平君)
  발원의 계자이며 생부는 우원(祐源)이다. 사마시에 급제,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행 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장을 역임하였다.
 배위는 순흥안씨 선(瑄)의 딸과 배천조씨, 고창오씨이다. 슬하에 4남 6녀를 두었다.
규근(奎根) 1857∼1922    파명:순평군(順平君)
  초휘는 근채(根采), 호는 탄석(灘石)이다. 석하의 아들이며 통정대부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장 · 동지경연 춘추관사 · 사과 수문장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흥성장씨로 규석(奎錫)의 딸이다. 숙부인 장씨는 효행이 지극하였다. 갑오동란 때 부군 근채가 적도로 몰려 가택수색을 당했는데, 부군이 출타하여 없었으므로 대신 그 아버지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에 부인이 말하기를 “부모의 잘못이 있으면 자식이 능히 그 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거늘, 하물며 죄가 없음에랴.” 하며, 병들고 늙은 시아버지를 대신하여 관아에 자진출두하여 부군의 무죄함을 변호하였다. 그러자 관에서도 그 높은 효성에 감탄하여 특별 훈방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되니 병자의 손과 발이 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이에 정부인의 효행을 관에 고하여 포상하자는 논의가 일어 권중건(權重乾)을 대표로 하여 상주하였다. 이에 따라 장례원에서 입안, 상주하여 효열녀 정려비 및 정문을 건립하고 정렬부인으로 봉해졌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규채(奎采) 1865∼1927    파명:순평군(順平君)
  초휘는 규명(奎明), 호는 야은(野隱)이다. 영하(英夏)의 3남으로 1865년(고종 2) 12월 12일에 태어나 1927년에 별세했다. 행사과(行司果) 수문장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배위는 의인 광산김씨로 인호(仁浩)의 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규회(奎會) 1701∼1758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영지(永之), 호는 하은(何隱). 득원(得元)의 아들이며 통정대부 첨지중추 · 부호군을 역임했다.
 배위는 숙부인 해평윤씨로 유징(有徵)의 딸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다.
득원(得元) 1680∼1740    파명:순평군(順平君)
  진화(震華)의 둘째 아들이며, 자는 중광(仲光)이다. 통정대부이고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을 역임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광주정씨로 문성(文聖)의 딸과, 숙부인 봉화정씨로 유적(維績)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발원(發源) 1770∼1835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장숙(章叔), 진철(鎭 )의 아들이며 경의 손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고 1826년(순조 26)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 호조정랑 · 이조정랑 · 대사간 · 시강원 사서 · 필선 ·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수찬관 · 양산군수 · 춘천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보성오씨로 성식(聖植)의 딸과 경주이씨, 나주임씨이다.
석하(奭夏) 1832∼1903    파명:순평군(順平君)
  초휘는 석진(奭鎭), 호는 송파(松坡)이다. 인봉의 아들이며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이며 호조판서를 추증받았다.
 배위는 숙부인 광산김씨로 세호(世湖)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