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6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진엽(晋燁) 1808∼1875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사은(士殷). 대군의 19대손이며 동남군의 16대손이다. 방주(房柱)의 아들이고 호조참판을 지낸 창호(昌浩)의 손자이다. 생부는 서주(?柱)이다. 1834년(순조 34) 갑오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하여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냈다.
 배위는 영산신씨 경헌(敬憲)의 딸과 연일승씨 추규(樞奎)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갈산면 오산 사두산 서록 해좌이다.
창서(昌瑞) 1758∼1832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사옥(士玉). 대군의 17대손이며 동남군의 14대손이다. 언항(彦恒)의 장남이며 시함(時咸)의 손자이다. 1792년(정조 16) 임자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냈다.
 배위는 여주이씨 종언(宗彦)의 딸이다.
 묘소는 목장(牧場) 간좌이다.
창심(昌心) 1755∼1837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대섭(大涉). 대군의 17대손이며 동남군의 14대손이다. 정랑(正郞)을 지낸 민좌(敏佐)의 장남이며 대명(臺明)의 손자이다. 1804년(순조 4) 갑자 식년 전시 을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지냈다.
 배위는 밀양박씨 필상(必尙)의 딸이다.
 묘소는 자성산(玆城山) 간좌이다.
창정(昌廷) 1800∼1863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사적(士迪). 대군의 17대손이며 동남군의 14대손이다. 민박(敏搏)의 장남이며 석곤(錫坤)의 손자이다. 1834년(순조 34) 갑오 식년 전시 을과에 급제하여 병조참의를 지냈다.
 배위는 남양홍씨 이하(履河)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사인산 중봉 축좌이다.
창진(昌軫) 1761∼1811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한오(漢五). 대군의 17대손이며 동남군의 14대손이다. 공조참의를 지낸 민영(敏英)의 3남이며 석모(錫模)의 손자이다. 좌승지를 지냈고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연안김씨 희봉(禧鳳)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연향산 성현 해좌이다.
창호(昌浩) 1760∼1803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성린(成璘). 대군의 17대손이며 동남군의 14대손이다. 좌승지를 지낸 민식(敏式)의 차남이며 사복시정을 지낸 익명(益明)의 손자이다. 호조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수원백씨 판서 양선(養善)의 딸이다.
 묘소는 백현(白峴) 을좌이다.
태성(泰成)) 1729 ∼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대군의 12대손이며 요성군의 9대손이고 정화릉참봉을 지낸 성백(成伯)의 3남이다. 참봉을 거쳐 정3품 좌부승지에 올랐다.
 배위는 숙부인 평산신씨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신흥군 하원천면 유산리 화안동 삼각동 갑좌이다.
태익(泰益) 1640∼1688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중익(重益). 대군의 13대손이며 요성군(遼城君)의 10대손이다. 용강현령을 지낸 명장(明章)의 장남이다.
 성균(成均) 진사에 올랐으며 장사랑 안릉참봉(安陵參奉)을 지내다가 정사(政事)에 밝아 정3품 통정대부를 지냈고 사헌부 감찰에 올랐으나 몇 년 못하고 48세에 별세했다.
 배위는 숙인(淑人) 경주김씨로 승륜(承倫)의 딸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신흥군 동고천면 풍양리 신전동 계좌이다.
택순(澤純) 1768∼1826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대군의 17대손이며 요성군의 14대손이고 종신(宗信)의 차남이다.
 종2품 가선대부를 지냈으며 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 동래정씨로 상조(尙祚)의 딸이다.
 묘소는 선영 하에 있다.
필정(必楨) 1688∼1734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대군의 15대손이며 요성군의 12대손이고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낸 철석(喆錫)의 장남이다.
 종2품 가선대부를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 청주한씨로 시은(是銀)의 딸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둔지(屯地) 신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