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6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우엽(友燁) 1826∼1888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사보(士保) 또는 치화(稚和). 대군의 19대손이며 동남군의 16대손이다. 장령을 지낸 기준(基準)의 차남이고 호조참판을 지낸 창호(昌浩)의 손자이다. 1849년(헌종 15) 기유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하여 사간(司諫)을 지냈다.
 배위는 해주노씨 상준(尙俊)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정주읍 신안 석수암(石秀岩) 서록 묘좌이다.
우태(友泰) 1668∼1752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군경(君卿). 대군의 12대손이며 동남군의 9대손이다. 부사과를 지낸 세한(世漢)의 장남이며, 공조참의를 지낸 화문의 장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다.
 배위는 공주김씨 진명(振銘)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묵현(墨峴) 간좌이고 표석이 있다.
윤각(倫珏) 1854∼1925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대군의 18대손이며 요성군의 15대손이고 순릉참봉을 지낸 응조(應祚)의 손자이다.
 정3품 통정대부를 지냈다.
 배위는 청주한씨 광운(光運)의 딸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하치천면 송당리 성치 간좌이다.
윤복(胤馥) 1736∼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달부(達夫). 대군의 14대손이며 동남군의 11대손이고 보령현감을 지낸 두운(斗運)의 장남이다. 1774년(영조 50) 갑오 평안도시 병과에 급제하여 태안군수(泰安郡守)를 지냈다.
 배위는 하동정씨이다.
 묘소는 효성령(曉星岺)에 있다.
윤성(允成) 1609∼1689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일명(一名) 윤성(尹成). 대군의 12대손이며 요성군의 9대손이다.
 정3품 어모장군을 지냈다.
 배위는 전주김씨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증상리 풍무동(風舞洞) 나대(羅帶) 동쪽 묘좌이다.
윤항(胤沆) 1704∼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계청(繼淸). 대군의 14대손이며 동남군의 11대손이다. 좌승지를 지낸 승운(升運)의 장남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선태(善泰)의 장손이다. 1735년(영조 11) 을묘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과 자인현감(玆仁縣監)을 지냈다.
 배위는 수원백씨 천기(天紀)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마산면 백미산(百美山) 선영이다.
윤항(胤恒) 1712∼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계상(繼常). 대군의 14대손이며 좌승지를 지낸 승운의 3남이고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선태의 손자이다. 1738년(영조 14) 무오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문천군수(文川郡守)를 지냈다.
 배위는 연안김씨 취맹(取孟)의 딸과 청주한씨 세철(世喆)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마산면 백미산 선영 서원(西院)에 있다.
윤홍(胤泓) 1746∼1811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대윤(大潤). 대군의 14대손이며 동남군의 11대손이다. 양보(良普)의 4남이며 오위장을 지낸 상태(尙泰)의 손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을 지냈다.
 배위는 호군(護軍) 하동정씨 재수(載壽)의 딸과 수원백씨 사익(思翼)의 딸이다.
 묘소는 인봉(印峰) 아래 을좌이다.
응수(應秀) 1592∼1676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여해(汝海). 대군의 11대손이며 요성군의 8대손이다.
 종3품 가선대부를 지냈다.
 배위는 청주한씨와 경주채씨다.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군 가평리 윤희동(尹希洞) 유좌(酉坐)에 있다.
익경(益京) 1546∼1599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대군의 14대손이며 요성군의 11대손이고 응수의 아들이다.
 1580년(선조 13) 정3품 통정대부를 지냈다.
 배위는 남양홍씨 태상(泰祥)의 딸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신흥군 동원평면 수침동(水砧洞) 을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