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군파 4세 약사에는 총 2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해천군(海川君) 1618∼1676    파명:양원군(楊原君)
  해천군(海川君) [1618(광해군 10)∼1676(숙종 2)]
 휘는 영(暎), 자는 현빈(顯彬). 양원군의 증손으로 1618년(광해군 10) 9월 2일에 태어나 1676년(숙종 2) 12월 4일에 별세하였다. 모친은 감사 윤유기(尹唯幾)의 딸로 현부인 해남윤씨이다. 공은 처음 해원부수를 제수받았고 후에 해천군이 되었다. 품계는 중의대부이다. 1651년(효종 2) 10월 12일에 적신 김자점(金自點)의 손자인 세룡(世龍)이 모의하여 무리들을 이끌고 몰래 작변을 도모하여 상궁을 범하고 핍박 하려하였다. 해천군은 일이 급함을 알고 맨발로 들어가 변 있음을 고하고 즉시 적신을 단봉문 아래서 잡아 화란을 평정하였다. 효종대왕은 크게 감동하여 공훈과 노고를 아름답게 여겨 책훈을 하교하니 애써 사양하였다. 상을 거절 하였으나 예법에 의거 여러번 상과 은전이 내려졌다. <자점난록>에 분무공신이라 하였다. 배위는 현부인 순창조씨이다. 묘소는 평창군 묘역 묘좌에 예장하였다. 5남 1녀를 두었으니 장남 수방(秀芳) · 차남 면방(勉芳) · 3남 신방(新芳) · 4남 진방(震芳) · 5남 준방(峻芳)이다. 딸은 박사침(朴思?)에게 출가했다.
화령군(花寧君) 1538∼ ?    파명:양원군(楊原君)
  화령군(花寧君) [1538(중종 33)∼ ? ]
 휘는 옥명(玉命), 자는 언규(彦珪). 양원군의 3남으로 1538년(중종 33) 6월 28일에 태어나 8월 12일 별세하였다. 초수는 화령부정(花寧副正)이고 묘소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옥녀봉 아래 생모인 선산김씨 묘역 신좌에 안장하였다. 배위 현부인 강릉김씨는 참판(參判) 광진(光軫)의 딸로 9월 21일 별세하였고 화령군 묘에 쌍폄으로 안장 하였다. 배위 현부인 봉화금씨는 첨정(僉正) 순성(舜成)의 딸로 기일이 10월 17일이며 화령군 묘역 남쪽 을좌에 안장하였다. 배위 현부인 상주박씨는 10월 14일에 태어나 8월 15일 별세하였다. 묘소는 서울 도봉구 상계동 온수곡에 안장하였다.
 화령군은 장남 무창군 (武昌君)과 차남 익창부수(益昌副守) · 3남 평창군(平昌君)외에 3녀를 두었다. 장녀는 임체(任逮), 차녀는 강개, 3녀는 김내현에게 출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