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6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민영(敏英) 1743∼1809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걸방(傑方). 대군의 16대손이며 동남군의 13대손이고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석모(錫模)의 장남이다. 공조참의를 지냈다.
 배위는 수원이씨 환동(煥東)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신리 연향산 동록 성현(城峴) 계좌이다.
민좌(敏佐) 1732∼1799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여행(汝行). 대군의 16대손이며 동남군의 13대손이다. 대명(臺明)의 장남이며 인욱(仁郁)의 장손이다. 1766년(영조 42) 병술 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여 정랑(正郞)을 지냈다.
 배위는 연일승씨 한조(漢朝)의 딸과 해주노씨 현각(玄珏)의 딸이다.
 묘소는 백현(白峴) 간좌이다.
민형(敏衡) 1786∼1862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백정(伯正). 대군의 16대손이며 동남군의 13대손이다. 석정(錫禎)의 장남이며 진사 윤계(胤階)의 장손이다. 1819년(순조 19) 기묘 식년 전시에서 을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지냈다.
 배위는 배천조씨 몽순(夢淳)의 딸이다.
 묘소는 안적산(安赤山) 갑좌이다.
상엽(尙燁) 1820∼1895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지경(志卿). 대군의 19대손이며 동남군의 16대손이다. 동지부사를 지낸 원주(元柱)의 장남이고 좌승지를 지낸 창진(昌軫)의 장손이다. 1846년(헌종 12) 병오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하고 집의를 지냈다.
 배위는 남평문씨 형국(衡國)의 딸과 광산탁씨 응호(應昊)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갈산면 고읍 방당동 계좌이다.
상태(尙泰) 1672∼1742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준경(俊卿), 호는 신곡(新谷). 대군의 12대손이며 동남군의 9대손이다. 부사과를 지낸 세한(世漢)의 차남이며 우태(友泰)의 동생이다. 진사로서 교수(敎授)와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배위는 남평문씨 병호(炳虎)의 딸과 청주한씨 선문(繕文)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신리 묵현(墨峴) 간좌이고 비석이 있다.
석기(錫祺) 1740∼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사온(士溫). 대군의 15대손이며 동남군의 12대손이다. 윤근(胤根)의 장남이며 부호군을 지낸 양운(良運)의 손자이다. 1777년(정조 1) 정유 식년 전시 을과에 급제하여 오위장을 지냈다.
 배위는 연안김씨 덕조(德祖)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갈산면 오산 방수교(防水橋) 경좌이다.
석심(錫心) 1762∼ ?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인보(仁甫). 대군의 15대손이며 동남군의 12대손이다. 문천군수(文川郡守)를 지낸 윤항(胤恒)의 5남이며 좌승지를 지낸 승운(升運)의 손자이다. 1786년(정조 10) 병오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 첨정(僉正)을 지냈다.
 배위는 연안김씨 동유(東有)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마산면 백미산 선영 오좌이다.
석후(錫후) 1745∼1785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성보(聖甫). 대군의 15대손이며 동남군의 12대손이다. 통덕랑을 지낸 윤방(胤昉)의 4남이며 좌승지를 지낸 승운(升運)의 손자이다. 1784년(정조 8) 갑진 증광 전시 병과에 급제하여 어천찰방(漁川察訪)을 지냈다.
 배위는 청주한씨 상호(尙灝)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마산면 백미산 선영 유좌이다.
세강(世綱) 1656∼1698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원기(元紀). 대군의 11대손이며 동남군의 8대손이고 공조참의를 지낸 화문의 4남이다. 무과에 급제, 부사과를 지냈다.
 배위는 밀양박씨 이검(以儉)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신리 연향산 남록 계좌이다.
세관(世觀) 1641∼1701    파명:안원대군(安原大君)
  자는 원빈(元賓). 대군의 11대손이며 동남군의 8대손이고 화문(華門)의 차남이다. 1755년(영조 31) 효행정문을 받았다.
 배위는 공주김씨 수광(洙光)의 딸이다.
 묘소는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연향산(延香山) 축좌이고 비석과 석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