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경순(敬淳) 1798∼1876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성진(聖眞), 석구(錫耉)의 아들이며 오산령(烏山令)의 11대손이다. 가선대부 행 용양위 부호군을 지냈다.
 배위는 장수황씨 상조(相朝)의 딸이다. 묘소는 아인부정 묘 국내 병좌이다.
관기(觀箕) 1676∼?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대관(大觀), 징(徵)의 차남으로 아인부정(阿仁副正)의 8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부호군(副護軍)으로서 오명항(吳命恒) · 박문수(朴文秀) 등과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이 되었다 하나 공신록에는 들어 있지 않다.
 배위는 숙부인 나주정씨로 도장(道長)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마전동 오좌에 합폄되어 있다.
기현(琦鉉) 1750∼1823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원실(元實), 의홍(毅弘)의 아들이며 제의 현손으로 의평군의 12대손이다. 1774년(영조 50) 무과에 급제, 절충장군 신도진(薪島鎭) 절제사를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남원양씨로 덕여(德輿)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서산 소마현(小馬峴) 안 선승동(先乘洞)에 있다.
눌(訥) 1552∼1631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중민(仲敏), 원명의 차남이며 의평군의 5대손이다. 가선대부 행 오위도총부 부총관 ·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광해군의 혼정(昏政)이 극에 달했을 때 처 조카 이흥립(李興立)이 의거할 뜻을 말하면서 동참하라 하니 공은 “그대는 종묘 · 사직을 위해서 나설 만하나, 사람마다 모두 동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고 하고, 가족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 고양 땅 전장으로 옮겨갔다. 인조반정 후에 이흥립이 공신록에 이름을 올리겠다 하니 공은 준엄히 꾸짖으며 끝내 사양했다.
 배위는 광주이씨 증 이조판서 행 순안현령 청(淸)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우산정(于山正) 묘소 왼쪽 기슭 갑좌이다.
두점(斗漸) 1788∼1862    파명:의평군(義平君)
  현록(顯祿)의 아들이며 장계수의 5남인 칠원도정의 11대손으로 의평군의 14대손이다. 충의위(忠義衛) 참봉 · 통정대부 행 돈녕부도정 겸 병조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 낙안이씨로 재원(在遠)의 딸이다. 묘소는 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사전동 200번지 산 자좌이다.
명유(溟游) 1784∼ ?    파명:의평군(義平君)
  초휘는 영호(永祜), 자는 여수(汝受). 기현의 계자로 생부는 장현(璋鉉)이다. 1813년(순조 13) 무과에 급제하여 1816년(순조 16) 선전관, 이듬해엔 계라차지(啓螺差知) · 사헌부 감찰, 1818년(순조 18) 사천현감, 1823년(순조 23) 호군, 1833년(순조 33) 수문장(守門將), 1835년(헌종 1) 첨정(僉正) 등을 역임했다.
 배위는 창녕조씨 성진(聲振)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본달산(本達山)에 합폄되어 있다.
명진(溟鎭) 1856∼1899    파명:의평군(義平君)
  성엽(聖曄)의 아들, 칠원도정의 11대손으로 의평군의 14대손이다. 통정대부 행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배위는 강릉김씨 학로(學魯)의 딸이다.
 묘소는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시변리 12번지 산 갑좌이다.
발(拔) ? ∼ ?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군수(君秀). 영화정(永花正) 정주(呈珠)의 장남이고 도개부정의 증손이며 의평군의 현손이다. 1535년(중종 30) 별시에 급제, 형조좌랑을 지냈다.
 배위는 최씨로 현감 상(祥)의 딸이다.
시부(時敷) 1589∼1650    파명:의평군(義平君)
  자는 백언(伯言), 호는 신미와(信美窩). 눌의 장남이며 의평군의 6대손이다. 젊어서부터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서도 깊은 경지에 다달았고 숭앙을 받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원도 양양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포저(浦渚) 조익(趙翼)은 유일(遺逸)의 선비를 추천할 때 안방준(安邦俊) · 조극선(趙克善)과 함께 공을 천거했다. 공은 왕자의 사부(師傅)와 도사(都事)로 추천을 받았으나 얼마 안 가 별세했다. 후에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증 숙부인 파평윤씨로 이조정랑 홍의(弘毅)의 딸이다. 묘소는 아버지 눌의 묘하 갑좌에 쌍분으로 묘셔졌다.
영희(永禧) ? ∼ ?    파명:의평군(義平君)
   오산령 효동(孝仝)의 계자로 생부는 직산부령 효순(孝純)이며 의평군의 현손이다. 어모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현풍곽씨로 세충(世忠)의 딸이다. 묘소는 직산부령 묘하 진좌에 합폄되어 있다.